정비사업 규제의 굴레, 정치권 '재초환 카드'는 또다시 서민 기만인가
10년간 반복된 '규제 태클'의 역사
2017~2020년: 정비사업 숨통 조이기
정부는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투기과열지구 확대,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제한 강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부활 등 일련의 규제 패키지를 쏟아내며 민간 정비사업의 수익성과 추진 속도를 크게 낮췄다. 서울시 역시 직권해제, 일몰제 적용, 대규모 단지 환경영향평가 의무화, 도시계획 심의 지연 등으로 정비구역 지정과 인허가 과정에 추가 부담을 얹었다.
이 기간 분양가 규제와 공공참여형 정비(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 중심 기조가 병행되면서 민간 중심 정비사업의 유인은 사실상 증발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사업성 악화로 정비사업 수주와 추진 속도가 둔화됐고, 건설업계 실적은 급격히 악화됐다.
그 결과: 공급 지연과 시장 불안 가중
규제 누적은 정비사업 추진 불확실성을 키웠고, 공급 지연 우려는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졌다. 일부 전문가는 집값 급등기 투기수요 억제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지만, 중장기적 공급 부족 위험을 낳았다는 비판이 훨씬 우세하다. 수도권 68만 가구 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규제 장벽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10·15 대책의 역설: 공급 확대 vs 사업 지연
정부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10·15 대책을 발표했지만, 서울 전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오히려 정비사업 조합원 부담이 커지고 사업 추진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조합원 지위 양도가 어려워지고, 2개 이상 조합원 자격 보유자는 5년간 재당첨 제한까지 받게 됐다. "공급 확대"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정비사업에 족쇄를 채운 이율배반의 상황이다.
재초환, 19년간 '유예–부활–또 유예'의 반복
국토교통부 분석에 따르면 전국 58개 단지가 재초환 부과 대상이며, 조합원 1인당 평균 1억 328만원의 부담금이 예상된다. 서울에서는 억대 부담금 단지가 속출할 전망이다.
정치권의 '재초환 카드': 진정성인가, 민심 달래기인가
여야 동시 완화론 급부상
10·15 대책 발표 일주일 만에 여야 핵심 인사들이 재초환 완화·폐지 논의를 공론화했다. 더불어민주당 복기왕 의원은 "공급 확대를 위해 완화 또는 폐지까지 가야 한다"고 언급했고,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유예기간을 늘리거나 폐지하는 두 가지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역시 재초환 폐지 법안을 발의하며 "이번엔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는 입장을 내놨다.
-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 YTN 라디오 인터뷰 중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시장과 업계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지대(토지 개발 등을 통해 정상 가격을 초과해 남기는 이익) 환수'를 핵심 철학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20대 대선 때도 재초환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선거가 끝나자 흐지부지됐던 전례가 있다. 전문가들은 "타이밍이 아쉽다", "등 떠밀린 재초환 논의"라며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국회 논의는 여전히 '계류' 상태
재초환 폐지·완화 법안은 국토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며, 정부는 "추후 국회 논의로 결정"이라는 유보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기국회 내 처리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구체적 입법 타임라인과 후속 시행령·지침 마련 계획은 불투명하다. 결국 "공급 확대 의지"라는 정치적 신호만 남고, 실제 제도 변경은 또다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정비사업 규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서민은 '챗바퀴 도는 노예'
규제 강화와 완화가 선거 일정과 정치 지형에 따라 반복되면서, 정작 노후 주택에 거주하며 재건축을 기다리는 서민 조합원들은 불확실성의 늪에 빠졌다. 사업성이 나빠지면 분담금이 올라가고, 규제 강화로 조합원 지위 양도마저 막히면서 진퇴양난에 처한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재초환 부담까지 더해지면 억대 부담금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선거용 카드'로만 활용
정비사업은 규제–완화의 진자운동 속에서 정치의 단기 신호로 소진되어 왔다. 집값이 오르면 규제를 강화해 "투기 억제"를 외치고, 민심이 악화되면 완화 카드를 꺼내 "공급 확대"를 약속한다. 하지만 실제 입법과 집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서민은 정치권의 이런 굴레 속에서 챗바퀴를 도는 노예처럼 끌려 다닐 뿐이다.
전문가 경고: "제도 일관성 없이는 공급도 안정도 없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사이클에 따라 규제와 완화 신호를 번갈아 내는 관행을 지양하고, 예측 가능한 로드맵을 고시해 사업 지연과 투기 과열을 동시에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초환 조정 시에도 지역·소득별 환수·기여 장치를 병행해 특정 지역 편익 집중과 가격 급등을 방지해야 하며, 법·제도 변경은 구체적 입법 타임라인과 후속 시행령·지침 명확화, 지자체 인허가 표준화로 체감 가능한 속도 개선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현재 진행 중 핵심 체크포인트
- 국회: 재초환 폐지·완화 법안 국토위 논의 급부상, 정기국회 내 처리 가능성 공방 지속
- 행정부: 9·7 공급 확대 방안 발표 이후 재초환은 유보적 태도, 민간 정비 인센티브·용적률은 공론화 예고
- 시장: 수도권 정비사업 기대감과 가격 자극 우려 동시 확대, 사업지별 재개 시그널 점검 필요
- 업계: "재초환만으로는 부족, 중첩된 규제 전면 개선 필요" 목소리 높여
무엇이 필요한가
제도 일관성: 정치 일정에 따라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는 관행을 중단하고, 중장기 예측 가능한 정비사업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목표 정합성: 재초환 조정 시 지역·소득별 환수와 기여 장치를 병행해 특정 지역 편익 집중과 가격 급등을 사전 차단해야 한다.
실행 담보: 법·제도 변경은 구체적 입법 일정, 시행령·지침 명확화, 지자체 인허가 표준화로 실질적 속도 개선을 보장해야 한다.
정비사업은 규제-완화의 진자운동 속에서 정치의 단기 신호로 소진되어 왔고, 지금 거론되는 재초환 완화·폐지 역시 실제 입법 전까지는 "하는 시늉"에 머무를 가능성이 상존한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본질은 실종되고, 정치권의 민심 달래기 쇼만 반복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